이름이 남은 만세 소리
3·1 운동은 «많은 사람이 만세를 불렀다»로만 남지 않았어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가 문서로 남았어요.

서울 서대문독립공원에 있는 3·1독립선언 기념탑이에요. 네모난 돌 받침대 위에 팔을 높이 치켜들고 깃발을 든 사람들의 청동상이 서 있어요. 받침대 앞 검은 판에는 「三·一 獨立宣言記念塔(삼일 독립 선언 기념탑)」이라고 적혀 있어요. 탑 왼쪽 뒤 낮은 검은 벽에는 독립선언서가 빽빽하게 새겨져 있고, 오른쪽 벽에는 사람들을 새긴 조각이 있어요. 뒤로 바위산이 보여요. · 사진 MonasteryInwang (위키미디어 공용) · CC0 · 1919년 당시의 모습이 아니라, 1963년에 탑골공원에 세웠다가 1979년에 철거되고 1992년에 지금 자리로 옮겨 온 기념탑이에요. 원본 사진에서 탑 둘레만 잘라 냈어요 · 내용과 어울리는 참고 사진이에요
한 줄로 말하면만세를 부른 사람들의 이름과 날짜와 장소가 기록으로 남아 있어요.
1,798건옛 기록으로 확인된 3·1 운동 시위 횟수
국사편찬위원회는 삼일운동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어요. 을 적어 놓은 옛 문서를 모아 하나씩 풀어 놓은 것이에요.
모은 문서는 38,363건이에요. 여기서 27,729건의 정보를 뽑아냈어요. 일본 경찰과 관리가 올린 보고서, 재판 기록, 그리고 『매일신보』·『독립신문』·『신한민보』 같은 그때의 신문이에요.
이 자료로 확인된 시위는 1,798건이에요. 참가한 사람은 82만에서 106만여 명으로 헤아렸어요. 국사편찬위원회는 이 수를 «자료에 확인되는 수치로서, 실제 참가자의 최소 수치에 가깝다»고 밝혔어요. 기록에 안 남은 사람이 더 있다는 뜻이에요.
누가 참여했는지도 기록에 남아 있어요. 학교 학생만이 아니었어요. 서당에 다니던 아이들이 앞장선 곳이 열 곳이 넘었고, 농민이 끼지 않은 곳이 거의 없었어요. 도시의 상인은 함께 가게 문을 닫았고, 노동자·승려·관리도 나섰어요.
구체적인 장면도 남아 있어요. 1919년 3월 4일 평안북도 선천에서는 장날에 맞춰 사람들이 모였어요. 읍내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았고, 조선인 가게는 전부 문을 닫았어요.
평양에서는 3월 4일부터 한 달 동안 상인들이 가게 문을 닫았어요. 사립학교는 전부 쉬었고, 관립·공립학교에 다니던 조선인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 않았어요. 가게 문을 닫는 것도, 학교에 가지 않는 것도 의사 표시였어요.
4월 1일 충청남도 천안군 병천 시장에는 약 3,000명이 모였어요. 옛 국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외쳤어요. 이날 앞장선 사람 가운데 조인원·김교선·유중권·유중무, 그리고 열일곱 살 유관순이 있었어요.
만세는 나라 안에서만 울린 게 아니에요. 만주의 룽징과 훈춘, 그리고 미국과 연해주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어요. 이 기록들은 지금 누구나 누리집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사건 하나를 누르면 날짜와 지역과 사람 이름이 나와요.
| 언제 | 어디서 | 기록에 남은 일 |
|---|---|---|
| 1919. 3. 4. | 평안북도 선천 | 장날 시위 중 읍내 노동자가 일손을 놓고, 조선인 가게가 모두 문을 닫음 |
| 1919. 3. 4.~4. 4. | 평안남도 평양 | 상인들이 가게 문을 닫고, 사립학교는 휴교, 조선인 학생은 등교를 거부함 |
| 1919. 4. 1. | 충청남도 천안 병천 시장 | 약 3,000명이 모여 국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외침 |










